하루 만에 뒤집힌 정책, 그 배경은?
지난 9월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H-1B 비자 발급 수수료를 기존 1,000달러에서 10만 달러로 100배 인상하는 포고문에 서명했습니다. 값싼 외국인 인력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탈피하고, 자국민에게 일자리를 우선 공급하겠다는 의지 표현이었습니다.
미국 상무장관은 “매년 10만 달러씩, 최대 6년간 부담해야 한다”고 설명하며 사실상 연회비 성격의 비용을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하루 뒤, “최초 신청 시 1회성(one-time fee)으로 부과되는 비용”이라고 입장을 정정했습니다. 기존 소지자나 갱신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도 했습니다.
하루 만에 정책 방향이 흔들린 배경에는 빅테크 기업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이민자의 나라’인 만큼, 현실적으로는 미국 산업계가 외국인 인재 없이는 버틸 수 없었던 것이죠.
H-1B 비자, 미국 산업계가 직면한 현실
H-1B 비자는 1990년 미국 이민법 개정을 통해 본격적으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당시 이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는 미국 내에서 전문직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 IT 산업 성장기에는 컴퓨터 공학과 소프트웨어 개발 인력을 중심으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자국 인재만으로는 이를 충당하기 어려웠습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급격히 성장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해외 인재를 영입할 필요가 있었고, H-1B는 그러한 필요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H-1B 발급자의 70% 이상이 IT 업계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국적별로는 인도가 약 70%를 차지하고 중국이 10% 안팎으로 뒤를 잇습니다. 한국은 전체의 약 1% 수준으로, 2023년 기준 약 4천 명 정도입니다.
시간이 흘러 제도가 정착할 즈음 부작용이 하나 둘 드러났습니다. 그 중심에는 가장 수혜를 보고 있던 빅테크 기업들이 제도를 악용하고 있었죠.
H-1B 근로자들은 해고되면 곧바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영주권 기회를 얻기 위해 낮은 임금과 불리한 근로 조건을 감수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이 미국 청년과 중산층 노동자의 임금 정체와 일자리 박탈이라는 부작용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H-1B 수수료 100배 인상 또한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아마존(1만 건), 마이크로소프트(5,189건), 메타(5,123건), 구글(4,181건) 등 H-1B 비자를 적극 이용하는 빅테크 기업들에 제약을 건 것이죠. 평균 연봉 12만 달러 수준의 엔지니어를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더 내며 영입한다는 것은 기업 운영 모델에 큰 충격을 주게 됩니다.
새우 등 터진 한국
한국계 기업에 미치는 영향
한국 기업들은 미국 현지에서 연구개발과 생산을 위해 H-1B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LG에너지솔루션이나 SK On, 현대차 역시 매년 수백 명 단위의 H-1B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H-1B 비자의 쿼터는 인도와 중국에 집중돼 있어, 한국 기업들은 추첨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수수료가 100배 인상된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집니다. 인력을 구하기도 어려운데, 인당 10만 달러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한다면 전체 비용은 수천만 달러까지 치솟게 됩니다.
특히 최근 조지아 공장에서 한국 근로자들이 구금된 사건 이후, 취업비자와 영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에 미국 진출에 대한 어려움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한국인 유학생, 취준생에 미치는 영향
해마다 약 2,000명의 한국인이 H-1B 비자를 통해 미국에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유학생의 전형적인 경로는 F-1 학생비자 → OPT(졸업 후 취업 연계) → H-1B → 영주권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번 인상안이 현실화되면 H-1B와 함께 다른 루트를 고려해야 합니다.
가장 주목받는 대안은 취업 이민 카테고리입니다. EB-3는 학사 학위만으로도 지원할 수 있지만, 고용주의 스폰서와 노동허가(PERM)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경우 EB-2, 그 중에서도 국익면제(NIW)를 활용하면 고용주 스폰서 없이도 스스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의사 면허가 있거나, 인공지능, 바이오, 반도체 등 전략 분야에 속하는 연구자와 엔지니어에게 유리합니다.
재정적 여력이 있다면 투자 이민(EB-5)을 고려할 수도 있습니다. 80만 달러 이상을 미국 내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고용을 창출하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다만 투자금 회수의 불확실성과 사기성 프로젝트의 위험이 크므로, 철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학문, 과학, 예술, 체육 등에서 국제적 명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경우 O-1 비자를 거쳐 EB-1A 영주권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또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장기간 연구 성과를 쌓은 경우 EB-1B 교수·연구원 카테고리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든 격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H-1B 수수료 인상은 비자 제도의 변화뿐 아니라, 글로벌 인재 이동의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한국 기업에게는 비용 부담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이라는 현실적 위기가, 한국 유학생들에게는 미국 체류를 위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Gold Card 영주권에 이어 H-1B까지, 미국 진출 전략에 근본적 수정이 요구되는 중대한 전환점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을 존중하면서도 냉철하게 현실을 분석하고, 나에게 맞는 합리적·현실적 경로를 설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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