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을 집주인이 아닌 제3기관에 맡기는 이른바 ‘전세신탁’안이 공개됐습니다.
전세사기와 보증사고를 막겠다는 명분 하에, 민간임대사업자를 대상으로 2026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바뀌는 건가?
이번 제도의 핵심 변화는 “보증금이 들어가는 계좌”입니다.
기존 전세 구조는 보증금이 임대인 계좌로 유입되고, 이후 임대인이 해당 자금을 대출 상환, 추가 매입, 사업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구조였습니다.
‘전세신탁’ 구조는 보증금의 일부 또는 전부가, HUG 등 제3기관 또는 그와 연계된 신탁·예치 계정에 예치되어 관리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전에 예치된 금액이 즉시 반환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기존 보증보험의 ‘대위변제 대기 구조’와 구별되는 핵심 차이로 설명됩니다.
‘전세신탁’의 구조 중 하나로 HUG가 거론되고 있는데, HUG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임대보증금보증, 분양보증 등 주택 관련 보증 업무와 주택도시기금의 전담 운용·관리 기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 주거 안정인가 금융 통제인가
해당 법안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은 ‘개인 자산(재산권)의 정책 재원화(사회화)’입니다.
전세금은 임차인이 장기간 축적한 개인 자산입니다. 주거 비용의 일부일 뿐 아니라, 가계의 주요한 유동자산입니다.
국가가 이 자금을 통합 관리하고 주택도시기금처럼 운용하는 순간, 전세금은 더 이상 개인 자산이 아니라 준공공 금융자원으로 성격이 바뀝니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돈의 흐름
주택도시기금의 본질은 정책금융입니다. 공공주택 공급, 저소득층 주거 대출, 도시재생 사업, 건설 경기 부양 등 국가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운용됩니다.
반면 전세보증금의 본질은 투자 자금이 아니라 생활 자산이며, 원금 보존과 유동성이 핵심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경기 변동이나 부동산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전세금 반환 안정성인데, 쉽게 말해 대규모 환급 수요가 동시에 발생하는 ‘뱅크런’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특히 부동산 자산 비중이 높고, 주택 시장 변동성이 실물경제로 빠르게 전이되는 한국의 구조에서는 이러한 위험은 더욱 증폭됩니다.
전세사기는 예방할 수 있을지언정, 주거 안정 리스크와 국가 정책 운용 리스크를 개인이 떠안아야하는 구조로 편입되는 것입니다.
구조적으로 발생할 시장 왜곡
수백조 원 규모의 전세금이 국가 주도로 주택금융에 투입될 경우, 시장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전세금이 주택정책 수단으로 편입될수록, 주택시장은 시장 원리가 아니라 정책 판단에 따라 출렁이는 구조로 변합니다. 기금을 특정 지역 개발에 집중 투자하거나, 대출을 확대하거나 제재함으로써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쉬운 구조가 되는 것이죠.
여기에 전세신탁·예치 구조가 더해질 경우, 전세 공급이 월세로 이동할 압력은 추가로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임대인 입장에서 실제 운용 가능한 자금이 줄어들게 되니, 현금흐름을 월세로 보완하려는 변화는 필연적인 것이죠.
‘금융 통제 국가’로 가는 문
최근 대한민국 정부 정책의 흐름은 명확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 금융 자산을 분산된 시장 영역에 맡기기보다, 점차 공공 시스템 안으로 흡수·관리하는 중앙집중형 구조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기적으로는 안정과 보호라는 명분을 갖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산 이동의 자유, 금융 선택권, 그리고 개인 책임에 기반한 시장 질서를 동시에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율과 책임이 줄어드는 자리에는 규제와 통제가 들어서게 되고, 그 결과 금융 시스템은 점점 ‘관리 대상’ 중심 구조로 재편될 것입니다.
‘전세신탁’ 역시 이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대한민국 금융 구조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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